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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16년 전, 명왕성이 더 이상 행성이 아니게 된 이유와 그 과정에 대하여

by 이본'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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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명왕성. 아홉 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2006년 8월 24일 열린 국제 천문 연맹 (IAU) 총회에서 처음 행성으로 발견된 지 불과 76년 만에 행성에서 제외됐다. 이상한 점은 명왕성을 행성으로부터 제외하는 투표를 한 것은 천문학자들이었지, 행성 과학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제 천문 연맹은 지구물리학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성을 재정의했으며, 명왕성은 크기가 작아서가 아니라 (명왕성은 미국 본토보다 작다) 궤도 주변에서 다른 천체 배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성에서 배제되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NASA의 전 수장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소행성에 접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국제 천문 연맹은 새로운 용어인 명왕성 급 천체 (Pluto-class object)라는 단어도 새롭게 명시하여 만들었다. 이 새 용어는 행성 과학자들 사이에서 지금껏 사용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용어이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명왕성의 강등이 국제 천문 연맹의 권위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태양계 내에 있는 장소를 이야기할 때 행성이라는 용어 대신 세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대신 얼음의 세계나 화산의 세계 등의 용어가 회자한다. 준 행성 또는 달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점은, 왜 행성의 정의가 2006년에 국제 천문 연맹에 의해 재검토돼야 했느냐는 점이다. 그 진짜 이유는 2003년 발견된 UB313이라고 불리는 천체 때문이다. 이 행성의 애칭은 처음 제나(Xena)에서 그 이후 에리스(Eris)로 바뀌게 된다. 일명 에리스는 태양의 타원 궤도 상에서 명왕성보다 3배나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크기는 명왕성보다 현저히 작다. 사실 국제 천문 연맹 총회가 열린 2006년 당시 학자들은 에리스가 명왕성보다 큰 것으로 여겼고, IAU 회의를 통해 정식으로 행성의 지위를 획득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리스 외에도 몇몇 명왕성과 크기가 비슷하다고 거론됐던 천체 후보 (추후 Make, Haumea와 Sedna로 이름 지어졌다)가 21세기 초에 속속 발견되면서, 국제 천문 연맹은 에리스를 정식 행성으로 지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에리스를 비롯한 다른 천체들도 행성이 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행성이 10개 혹은 15개씩이나 있어도 되는 것일까? 사실 기술의 진화와 함께 점차 발전하는 천체 망원경만 있다면 행성은 50개 혹은 100개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명왕성은 행성에서 일반 천체로 강등당하게 된다. 행성의 수를 적게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카이퍼 벨트란 해왕성의 궤도보다 멀리 있는 얼음 같은 물체가 밀집된 원반 모양을 한 궤도의 영역이다. 이 궤도는 중심에서 상당 부분 편향되어 있다. 명왕성을 포함한 이들 천체 모두가 카이퍼벨트에 속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NASA의 전 장관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소행성에 접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명왕성이 이 같은 푸대접을 받았던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NASA의 탐사선 보이저가 태양계 외행성을 찾으러 떠난 그랜드 투어 계획에서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관찰한 뒤 명왕성을 찾으러 떠나지 않고 1990년 종료됐다. 보이저2는 중력으로부터의 보조를 이용해 175년에 한 번 일어나는 행성 직렬 현상을 통해 해왕성을 지나 명왕성으로 항해할 수 있었었다. 하지만 NASA의 과학자들은 해왕성의 달인 트리톤을 관찰할 것을 우선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보이저는 명왕성을 영원히 관찰하지 못했다. 행성이 행성에서 천체로 강등된 것 역시 2006년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801년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천체 세레스가 발견됐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잃어버린 행성으로 여겨져 행성의 지위를 달게 됐다. 직후 단순 소행성으로 강등되긴 했지만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2006년 국제 천문 연맹 회의는 세레스를 준 행성으로 승격시켰다. 뉴 허라이즌스는 2006년 1월 명왕성을 향해 발사됐고, 1년 뒤 탐사선 동이 세레스로 발사됐다. 명왕성과 세레스를 위한 미션들이 모두 진행 단계에 있던 태양계 두 천체의 지위를 놓고 투표가 이뤄진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 탐사를 통해 두 개의 새로운 준 행성은 행성 과학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존재로 밝혀졌다. 모두 목성의 달인 에우로파나 토성의 위성인 엔켈라두스와 타이탄 등과 같은 오션월드 후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명왕성으로 출발한 뉴 허라이즌스는 2015년 7월 14일 명왕성을 통과했을 때, 그 카메라를 통해 태양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비춰 주었다. 탐사선은 명왕성이 모든 과학자의 거대한 꿈을 보여주고 실현하게 해 주었다. 명왕성은 지질학적으로, 화산 적으로, 그리고 구조학적으로 활발한 변화를 보여주며 과학자들의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태양으로부터 지구보다 40배나 먼 이 명왕성의 땅에서 독자적인 복잡한 대기와 지표, 유기화합물 그리고 지각에 거대한 단층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왕성은 지질학적으로 놀라운 복합적인 특성을 가진 곳으로, 질소 얼음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평원과 산맥과 사구가 발견되며 얼음 화산까지 볼 수 있다. 명왕성에서 발견된 이 여러 가지 지질학적, 대기적 풍요로움을 감안할 때 뉴 허라이즌스의 근접 비행 이후에 국제 천문학 회의가 이루어졌다면 IAU가 행성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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